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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야구선수 이호성 의문의 네모녀 살인사건 <이호성>

픔★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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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전직 야구선수 출신 사업가 이호성이

자영업자인 내연녀와 그녀의 세 딸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입니다.

 

 

이호성이 진범이 확실했지만 이호성이 체포되기 전에 아무런 진술도 남기지 않고 자살을 했기때문에

그가 왜 그들을 살해했는지 동기가 불분명한 사건입니다.

 

<이호성의 사업과 실패>

 

2001년 야구선수를 은퇴한 이호성은 자신의 이름을 딴 웨딩홀인 '호성웨딩홀'을 운영하면서 잘나가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1년에 10억 가까이 벌 정도로 성공했죠.

수 많은 야구 선수들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3년여간 사업을 해 지방에 2호, 3호점을 낼 정도로 전성기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2005년, 실내스크린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무산되어 110억 이상의 부도를 내면서 실패하게됩니다. 기존의 웨딩홀도 접게되었습니다.

 

 

전라남도 순천시에 6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을 짓고 분양 사업을 시도했습니다. 한국마사회에 '경마장 장외발매소' 모집 공고에 신청해 허가도 땄죠.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교육도시 순천에 사행성 업소가 웬말이냐'며 반대해서 사업 허가가 돌연 취소되게 됩니다.

 

 

게다가 부동산 개발 관련 사기 혐의까지 얽히면서 구속되었는데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빚이 많이 남아있었고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가정도 깨져버렸습니다

 

<양다리>

 

이 과정에서 그는 2명의 여자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은평구 갈현동에서 참치집을 운영하던 김연숙(45)은 이호성과 2년간 교제해왔는데 그녀의 전남편은 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우울증이 심해져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호성은 일산 신도시에 살던 차씨와도 사귀었는데 2007년 8월부터 만나기 시작해서 12월부터 동거를 했다고해요.

 

<범행>

 

2008년 2월 15일

이호성의 내연녀 김연숙은 이호성과 함께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전세금 잔금 1억 7천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5개 은행에 3~5천만원씩 나누어 예치했습니다.

 

2월 17일

∨ 오후 5~6시, 김씨의 둘째 딸(19), 세째딸(13)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2월 18일

 

∨ 0시 10분, 김연숙은 퇴근하면서 횟집 종업원들에게 며칠 여행을 다녀 오겠다며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됩니다. 그녀의 세 딸도 18일 이후 연락이 두절됩니다.

 

∨ 오전, 김연숙은 5개 은행에 분산 예치했던 1억 7천만원을 모두 인출합니다.

 

∨ 오후 4시~5시, 김씨의 집에 김씨의 차를 주차하는 남자가 목격됩니다.

 

∨ ??시, 이호성은 김씨의 집에서 김씨와 그녀의 딸들을 살해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국과수 조사 결과 김씨와 둘째딸, 셋째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졌습니다.

 

이호성은 침대 매트리스에 묻은 혈흔을 지우기 위해 검은 잉크를 뿌리면서

'엄마가 많이 아프시니 빨리 와'라며 둘째 딸을 집으로 유인했습니다.

 

 

∨ 오후 9시 14분~56분, CCTV에 한 남성이 카트를 끌고 김씨의 아파트를 5차례 드나들면서 대형 가방을 실어나가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 밤 11시~12시경, 김씨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딸이 통화한 기록이 발견되었고, 

밤 12시에는 종로 일대에서 김씨의 핸드폰과 그녀의 큰딸의 마지막 통화가 기록되었습니다.

 

이호성은 밝에 있는 큰딸을 불러내 밖에서 살해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첫째딸은 둔기에 의한 두개골 골절, 뇌출혈로 인한 머리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월 19일

 

∨새벽 4시 40분, 김씨의 큰 딸 휴대전화가 전남 화순의 한 기지국에서 잡혔습니다. 

 

∨오전 7시 19분에 호남 고속도로 상행선 장성나들목의 자동판독기 CCTV에서 김씨의 승용차가 잡혔습니다.

 

 

∨오전 9시~11시, 이호성의 의뢰를 받은 인부들이 화순군에서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는 인부들과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묘소로 가면서 인부들에게 교회 표지석을 설치한다는 거짓말로 아버지의 묘소 근처 길가에 가로 100cm, 세로 200cm, 깊이 150cm 정도 되는 구덩이를 파라고 시켰습니다.

 

 

사건 제보자였던 인부에 말에 의하면 차 2대로 이동했는데 이호성이 탄 흰색 차는 이호성 혼자 타고 있었으며 차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고합니다.

 

조금이라도 흰색 차 근처에 접근하면 죽여버릴 듯이 살벌하게 노려봤다고...

흰색 승용차 안에는 자석요 가방이 많이 들어있었다고합니다. 그 자석요 가방 안에는 네 모녀의 사체가 들어있었지만 인부들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2시간동안 구덩이를 판 인부들에게 꽤나 큰 돈을 수고료로 주고 인부들을 보냈습니다.

 

∨오후 12시, 흰색 승용차라 화순군을 벗어나는 것이 CCTV에 찍혔습니다. 

 

∨오후 2시, 이호성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서 평소 알고지낸 지인 이씨에게 현금 5천만원을 전달하고 그 돈을 자신의 형에게 입금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후 4시, 김씨의 휴대전화로 그녀가 운영하던 횟집 주방장에게 "주말에 식당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2월 20일

∨오후 6시 18분, 김씨가 살던 아파트에 그녀의 차를 주차하고 갑니다.

 

2월 26일

김씨의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던 김씨의 오빠는 지구대에 연락을 해 아파트의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 확인을 했습니다. 거실 형광등이 깨진 점 말고는 집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컴퓨터도 켜져있었습니다. 그렇게 별 다른 의심없이 오빠는 돌아갑니다.

 

3월 3일

 

김씨의 오빠는 학교 개학날짜가 되었는데도 여행에서 돌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아 걱정이 되어 횟집에 찾아갔는데 사장님이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4모녀의 실종 신고를 하게됩니다.

경살의 수사가 사직되고 김씨의 가족이 실종된 날이라고 생각되는 날에 한 남자가 아파트 1층에서 큰 검정색 가방 3개를 연달아 손수레로 실어나르는 장면이 CCTV에 찍혔습니다.

 

 

경찰은 김씨의 주변사람들로부터 김씨의 남자관계를 물었고 전 야구선수 이호성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호성을 아는 사람들에게 CCTV를 보여준 결과 CCTV에 나온 사람의 뒷모습이나 걸음걸이가 이호성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3월 7일

이호성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집니다.

 

3 월 8일

언론은 유명 야구선수가 네모녀 실종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호성이 일산 경마장에서 또다른 내연녀인 차씨와 자주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옵니다. 이호성은 차씨에게 4천만원을 주기도 하고 이호성이 자살하기 전 31시간동안 함께 있던 여자였습니다.

 

경찰은 이호성을 용의자로 지목한 후에도 이를 철저하게 비밀로 한 채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SBS 취재진이 모종의 경로를 통해 용의자가 이호성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단독 보도를 준비했죠.

 

 

이 사실을 알게된 경찰은 SBS로 찾아가 범인 검거가 임박했으니 보도를 조금 미뤄달라고 요청했으나 SBS는 이를 거부하고 범인이 이호성이라고 단독 특종보도를 때려버립니다. 엠바고를 깨버린거죠.

 

3월 9일

 

늦은 밤, 이호성은 성수대교에서 차씨와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차씨를 택시를 태워 집에 보내고 그는 그대로 투신자살을 해버렸습니다.

 

이호성이 남긴 유류품

 

이호성은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기때문에 공개 수사는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용의자라는 사실이 폭로되면 그가 잠적하거나 자살할 가능성이 높았기때문이죠.

게다가 이호성은 유명인이라서 이 좁은 한국에서 숨을 곳이 없었기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굳이 SBS가 특종이라며 성급하게 터트리는 바람에 이호성이 자살을 해버린겁니다.

 

<이호성의 사망과 사건 종결>

언론이 이호성이 용의자임을 떠드는바람에 공개수사로 들어가게됩니다. 김씨의 은행 계죄를 압수수색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이호성은 현상금 300만원의 공개 수배령이 내려졌습니다.

 

공개수배된지 몇시간만인 오후 3시 8분, 반포대교 남단에서 400m, 떨어진 한강 가운데 이호성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지문 감식을 통해 이호성으로 밝혀졌죠. 사망 원인은 익사였습니다.

 

이송단의 한 요원의 말로는 이호성의 시체는 한이 맺힌 듯 끔찍하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고 해요.

 

 

8시간 후인 저녁 11시,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호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공동묘지 근처에 구덩이를 파달라고 부탁했다는거예요.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가서 구덩이를 판 결과 구덩이이는 모녀가 사라진 날 이호성이 가져갔던 가방 3개가 발견되었고 가방 하나에 시체 한구씩 두꺼운 비닐에 싸여 들어있었습니다. 

 

시신들 위에 80kg에 이르는 커다란 바윗돌이 눌러져있었다고해요. 인부들의 제보가 없었으면 네 모녀는 찾지 못했을수도 있었습니다.

 

<장례식>

 

3월 13일, 피해자들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여 애통해했습니다.

 

 

하지만 이호성의 빈소에는 유명인임에도 불구하고 조문객이 극소수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조화도 오지 않았어요. 소수의 이호성의 유족들도 기자들의 방문을 막고 작은 방으로 가서 본인들끼리 조촐하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 명단에도 이호성의 이름은 없었는데 유족들과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조용히 빨리 끝내려고 기재하지 않았다고해요.

 

이호성의 영정사진에 수건도 덮여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화려한 명성이 무색하게도 동료와 팬들한테조차 외면당해 초라한 장례식을 맞이하고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그는 자살하기 전에 편지 형식으로 몇가지 유서를 남겼는데 형에게는 "어머니와 형, 아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아들을 잘 챙겨달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지인에게는 "야구협회장을 축하하고 옛 시절이 행복했다, 하늘나라로 먼저 가있을게"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을 적었어요. 

가장 중요한 피해자들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호성이란 이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호성 웨딩홀'은 오래 전부터 이호성이 사업실패를 하면서 웨딩홀을 매각해서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만 매입한 사람이 인지도에 기대보고자 '호성'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것이 잘못된 판단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예약자가 급감하면서 결국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동업자 실종사건>

 

2005년 8월 3일, 이호성의 동업자이자 광주 지역의 조직폭력배였던 조씨가 이호성을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선 직후 실종되었습니다. 조씨는 이호성을 만나 30여분간 대화를 하고 아내, 다른 친구와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끊겼어요.

 

조씨의 가족들은 실종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잠적한 것이라 결혼을 내렸다가 네모녀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조씨 실종사건을 다시 수면위로 올려 수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이호성이 죽어버려 증거도 없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것으로 보입니다.

 

<사라진 7천만원>

 

이호성이 김씨에게 빼앗은 1억 7천만원 가운데 1억은 형과 다른 내연녀인 차씨에게 전달되었지만

나머지 7천만원의 행방은 아직까지도 묘연합니다.

 

<왜?>

 

도대체 이호성은 왜 4명이나 (동업자까지 하면 5명)을 죽인걸까요?

그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차씨는 채무 관계가 복잡하긴 했지만 그렇게 돈에 쪼들리지 않아 돈 때문에 범행을 저지를 정도는 아니라는 증언을 합니다.

 

그는 110억대 부도를 내고 폭력조직의 사채까지 끌어써서 최소 270억의 사채 이지를 끌어안고있었습니다.

1억 7천만원은 그의 채무를 갚는데 별 소용이 없던거죠.

 

 

잘나가던 야구스타이자 사업가였는데 빚에 쪼들리는 신세가 되자 피해자에게 손을 벌렸는데 다른 내연녀 문제로 다툼이 생겨 이호성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을까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업자 실종 사건이 그의 범죄라면 한번 사람을 죽여본 사람이 두번을 못죽일까요?

자존심을 긁는 사소한 자극 하나로 살인으로 이어지기도합니다. 여기저기 빚독촉에 시달리던 이호성도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겠죠. 별거 아닌 말에 열폭해서 김씨를 살해하고 그녀의 딸들까지 살해한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이호성은 시비 붙은 조폭 4명을 쥐팬적도 있다고해요.

 

<내사 결과>

 

경찰은 이호성의 혐의를 확신하고 수사를 종결합니다. 확실한 증거와 증언이 있었기때문이예요.

인부들에게 구덩이를 파게한 결정적인 증언으로 그거 범인이 확실했지만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기도 전에 그가 자살해버려서 이호성을 유죄라고 공식적으로 확언하지 못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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