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건파일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 <성낙주>

픔★ 2024. 7. 2.
반응형

 

성낙주는 1994년 8월 14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동에서 황금장을 운영하던 동거녀 전옥수(45년생)와 그녀의 중학생 딸 이향정(80년생)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월곡동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입니다. 시신을 매우 잔혹하게 훼손해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지금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수감중입니다.

 

<성낙주>

 

51년 충청북도 제천군에서 태어난 성낙주는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끝이었고 결혼해 아들 3명을 낳았으나 72년 군 입대 때문에 처자식과 잠시 이별했습니다. 그러다 군복무 중 아내가 병으로 사망하고말았죠.


전역 후 77년에 출가해 태고종 종적으로 승려생활을 했으나 84년에 승적을 박탈당하고 떠돌이생활을 전전하다가 승려 생활을 할때 배운 것으로 미아동에서 철학관을 운영했습니다.

 

<피해자와의 만남>

 

93년 중순 쯤, 사건의 피해자인 전옥수가 그의 철학관을 찾았습니다. 인생 상담을 한 것을 계기로 서로 만남을 가졌죠. 당시 성낙주는 그녀가 남편 없이 자신의 명의로 된 여관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점과 사주를 봐준다는 핑계로 그녀의 집에 자주 들락거렸죠.

 

전옥수가 허리가 안좋다고 하자 침과 뜸을 놔주고 지압시술을 해주다가 내연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이내 동거까지 하게 되었고 아예 철학관을 접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전옥수는 무일푼으로 집에서 밥만 축내는 성낙주가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자 맘에 들지 않았고 자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범행과정>

 

전옥수의 딸인 이향정이 실종되기 하루 전날인 8월 13일 저녁에 성낙주는 전옥수와 심하게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걸 지켜봤던 딸은 성낙주에게 "요즘 엄마랑 자주 싸우는데 그만 괴롭히고 이젠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딸한테 면박을 당한 성낙주는 크게 분노해 이향정을 죽이기로 결심하죠.

 

다음날인 14일 오전 5시쯤 성낙주는 전옥수의 집을 찾아가 작은 방에서 혼자 자고있는 이향정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욕실로 옮깁니다.

 

목과 팔, 다리 등을 36~38차례로 토막내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자르고 손가락 끝의 지문을 없애고 피부 곳곳을 도려내고, 안면의 피부를 도려낸 후 살가죽을 잘라 변기에 버려버렸습니다. 토막낸 시신은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라면 상자에 나눠담아 테이프로 밀봉했습니다.

얼마나 물을 많이 내렸는지 다음날 건물 물탱크가 텅텅 비게 되었고 물 공급이 중단댔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자신의 이복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고사를 지낸 뒤 돼지머리가 생겨 버려야 하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이복동생이 오후 1시쯤 함께 북한강 휴게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성낙주는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미리 구매한 타자기로 이향정이 가출한 것처럼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아저씨, 나는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남자도 이는 살 수 업어요.
그래서 그를 따라가기로 결정했으니, 나 찾지 마세요.
엄마한테도 나 잊고 아저씨 에서 행하게 살라고 말해주세요.」

 

전옥수는 그 메모를 보고 경찰에 가출신고를 합니다.

 

 

딸의 실종신고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전옥수와 또 다시 심하게 다투게됩니다.
전옥수는 "재산도 없이 남자 구실도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믿고 사냐"라고 말을 합니다. 성낙주는 80년대 초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쳐 성기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화가난 성낙주는 여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전옥수를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첫번째 범행때와 똑같았습니다. 이틀 전 미리 구매한 수술용 메스를 사용했습니다. 시신을 토막내고 살점을 도려내 정화조에 버리고 나머지는 라면상자 3개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이번엔 이복형에게 전화를 걸어 렌터카를 타고 강원도 원주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 시신을 묻었습니다.

 

<체포>

 

두 모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성낙주는 자신이 여관 주인인마냥 행세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옥수 어디갔느냐?"라고 전화를 걸었고 성낙주는 "가출한 딸을 위해 절에 불공 드리러 갔다"고 둘러댔죠. 그를 수상하게 여기던 친구는 경찰에 전옥수의 실종신고를 합니다.

 

실종 신고 당일, 경찰은 10시에 모텔을 지키고 있던 성낙주를 연행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술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 나올때마다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거나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했고 거짓말로 수사에 혼선을 주었습니다.

 

"전옥수가 불경드리러 간 날 어디에 있었나?"-경찰
"경동시장에서 장을 봤다."-성낙주

하지만 그의 짐보따리 안에는 휴게소 영수증이 발견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딸이 남긴 메모에서 '옆'을 '엽'으로 틀리게 적은 글자들이 나왔고 중학교 3학년 아이가 맞춤법을 틀릴리가 없다고 판단해 형사들은 성낙주에게 당일 행적을 자술서에 써달라고 요구하면서

 

 '옆'과 '없'을 쓰도록 유도했더니 '옆'을 '엽'으로, '없'을 '업'으로 표기하는 바람이 성낙주가 메모를 썼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동시장에서 수술용 메스를 구입하고 짐보따리에서 휴게소 영수증이 나온 것을 바탕으로 결국 성낙주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사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입니다.

 

<애런 베이츠와의 만남>

2000년, 그의 이름이 다시 한번 알려지게됩니다.애런 베이츠(한국이름 성진철)은 73년 생으로 6살이었던 79년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다녔죠. 96년에 미 육군에 입대한 뒤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에 자원해 자신의 룸메이트와 함께 부모님을 찾아나섰습니다.

 

마침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이던 성낙주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3번째 아들이라고 나타났습니다. 사형수 신분으로 2000년 둘은 만나게 되었고 이는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친자검사 결과 애런 베이츠는 성낙주의 친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낙주가 의도적으로 애런 베이츠를 속이고 사형을 피하는데 이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성낙주가 애런 베이츠에게 보낸 편지

 

애런 베이츠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는데요 친자가 아닌걸로 밝혀졌지만 그는 성낙주를 자신의 친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본인의 어릴적 사신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아마 성낙주와의 교류때문에 아버지의 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친 아버지를 만났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사형을 당해 아버지와 이별을 한다면 너무 안타깝다'라는 식의 구명 여론이 강해서 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명단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는 아직까지 생존중입니다.

 

<마이파더>

 

이 이야기는 2007년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성낙주 역할은 김영철님이 하셨고, 아들 애런 베이츠 역은 다니앨 헤니가 맡으셨습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의 유족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거나 신부의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등의 요소가 아직까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편지>

 

성낙주가 방송 제작진에게 보내왔다고 하는 편지입니다.
뭔가 유창한 듯 말하지만 맥락이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중간중간 틀린 맞춤법때문에 불편함도 느껴집니다. 

 


그의 편지에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의 내용보다 범행에 대한 변명의 내용이 더 많았습니다.
뻔뻔하게 영치금을 요구하기도했죠.

 

 


이런 사람을 왜 우리가 보듬어줘야할까요?

 

반응형

댓글